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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끼인 삶...삶의 고통에서 버티기

하늘사랑68 2024. 5. 30. 22:39

이 글은 죄송하지만, 여려 분을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입니다.

그래서, 읽는 분들은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젊어서는 50이 넘으면, 삶이 나에게 조그만 틈이라도 보여주겠지

이런 기대를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 50이 넘어서, 60을 향하고 있지만, 삶은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벽을 만들고, 높은 담을 쌓고, 조그만 빛 새어 나올 수 없도록 한다.

지금 생각하면, 이 기대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기대, 희망 이런 것들은 개인에 종속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희망, 기대가 왜 나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현자는 사람은 태어남이 고통의 시작이라고 했다.

나는 이 정의를 잘 따르는 사람이다.

나에게서 은 자꾸 멀어지고, 죽음은 더 가까워진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가슴은 공허하다.


 내 책상 위에 있는 생사학 대가인 알폰스 데켄의 "죽음이 삶에게" 표지를 보면서,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본다.

 

나는 가끔씩 "삶을 사는 나"와 "죽은 나"를 분리하고 싶다.

서로 다른 시간의 살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죽음이 삶에게 작은 것이라고 설명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죽음은 나에게는 아직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아니다.

죽음은 나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나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냥 살아 있으니 살고 있고, 내 몸에 달린 머리는 불안한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 죽음은 나에게는 미래이다.

그 외에도 여러 미래가 있지만, 죽음, 죽음과 관련된 사건들이 그것들은 묻어버린다.

나를 삶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불안을 알았고,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고, 해도 안된다는 것을 알아서 우울이 생겼다.

삶, 죽음을 알기 위한 노력이 정신질환이라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삶은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고, 잘 견딜 수 있는 버티기 능력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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